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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잠시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아마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몰랐던 듯 싶다. 방을 잘못 찾은 머저리인가 생각할 때쯤, 다시 한번 노크가 울리고 곧이어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여긴 내 방인데요."
맑고 분명한, 잘 울리는 청년의 음성이다.
"착각했군. 밑에 가서 다시 알아보시오."
잠시 평화로워졌지만, 겉옷을 벗고 드러누운 짚 매트가 따뜻해질 때쯤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여기 맞다는데요!"
"뭐?"
"누가 있던 자기들 알 바 아니래요. 이봐요, 문 좀 열어 봐요. 일단 얼굴은 좀 보고 얘기합시다."
거의 이를 갈며, 에릭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셔츠에 속바지만 걸친 차림이었지만, 이런 식의 무단 침입에 옷을 제대로 입고 나갈 정도로 격식을 차리는 삶은 살아본 적 없다. 문 손잡이 위에 습관적으로 걸어둔 부적을 확인하고, 단도를 들고 문을 열자 거기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옷차림을 보자마자, 에릭은 인상을 쓰며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당신같은 손님이면 여기보다 더 좋은 데로 갈 수 있을 텐데."
"성 게오르기우스 축일이 얼마 안 남았잖아요. 방이 없다더군요."
에릭은 단도를 대강 방 기둥에 던져 박아두고 남자 쪽을 바라보았다. 반반한 얼굴에 흰 피부, 최고급은 아니지만 꽤 깔끔한 아마셔츠 위에 세공된 나무단추가 달린 조끼를 입고 그 위에 모직 코트까지 걸쳤다. 어딜 봐도 영락없이 서생같은 차림이었다.
같은 잔의 술을 나눠마시고 단지를 완전히 비운 뒤, 에릭은 몸이 적절히 달아올랐음을 느끼고 찰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깨를 붙들고 키스하자, 따스한 입술이 미소를 그리며 벌어진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가 얽혔다. 진한 포도주 향기가 타액을 타고 넘쳐나 천천히 목 위로 흐른다. 손을 들어 옷을 벗겨내며 목으로 입술을 내렸는데도 포도주 향기는 약해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강해졌다. 목에 자국을 남기자 어느새 완전히 드러난 어깨가 움츠러들었고, 더 강하게 이 쪽으로 끌어당기자 아무 저항없이 안겨드는 몸이 뜨겁다.
"대체 언제 다 벗었지?"
"쉬-"
아까까지 벗기고 있었던 건 맞지만 어느새인가 마법처럼 흰 몸이 온전히 드러나 있다. 거기 이를 세우며 물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드러난 에릭의 팔에 감긴 금속 장식이 찰스의 몸에 가끔 닿았고, 술 덕분에 몸이 달아올랐다 해도, 아니 오히려 그 때문에 차가와서 그러는지 남자가 흠칫거린다.
묘하게 그 움직임에 감질나, 에릭은 쇄골에 진한 흔적을 남긴 후 목우물을 혀로 덧그리고 천천히 입을 내렸다. 남자 주제에 여자의 것마냥 묘하게 부드러운 가슴에 혀를 굴리다 이 끝으로 유두를 물자 탄성이 터져나온다.
"찰스?"
포도주 향기 때문인지 머리가 몽롱했다. 혀가 닿는 곳마다 농밀하게 단 향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착각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팔로 몸을 감아안자 갑자기 찰스가 공격적이 되었다. 양 손을 에릭에 가슴에 짚고 힘껏 매트리스에 밀어붙이더니, 오히려 에릭의 몸을 타고 앉아 온 몸에 키스를 퍼붓는다. 찰스의 손이 지나가는 곳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전율이 일었고, 입술이 닿는 곳은 꼭 불붙은 석탄이 닿은 듯 뜨거웠다. 잔근육이 가득한 배와 옆구리를 쓸어보던 찰스가 이미 단단히 서 있는 페니스에 손를 대자, 에릭은 견디지 못하고 으르렁대는 짐승처럼 신음했다.
"쉿- 착하지."
말은 부드러웠지만 드러난 이가 묘하게 뾰족해 보인다. 아까의 어설퍼 보이던 그 서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요염하게 젖은 시선이 에릭을 내려다 보았고, 계속된 키스로 달아오른 입술이 저속한 말을 내뱉으며 웃음을 그린다. 휠 정도로 일어선 것을 감아쥔 찰스가 다리를 벌리고 그 위에 천천히 내려앉는 동안, 에릭은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꽉 조여오는 감촉에 긴 한숨을 내뱉었다. 온 몸이 땀에 젖었는데, 위에 내려앉은 몸은 너무나 뜨겁고도 부드럽다. 거대한 물건을 완전히 품은 둔부가 꽉 밀착된 상태에서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고, 에릭은 자신을 타고 앉은 남자가 혀로 입술을 핥으며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자신에게 키스해 오는 것을 헐떡이며 무력하게 바라보았다.
숨은 더 가빠왔고 향기는 더 농밀해졌고 모든 것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지만 압도적인 쾌감의 폭풍 가운데 무언가가 에릭의 질주를 가로막으려 애쓰고 있었다. 이질감, 실로 기묘한 이질감이 든 것이다.
그 포도주가 이렇게 향기로왔나?
살결이 이렇게 부드러웠나? 그 남자의 살결이?
아까 그가 보았던 서생의 눈이 이런 빛을 띠고 있었나?
"그럼, 그럼 설마 악마의 궤계입니까?"
"예."
짧고 간략한 답이었지만, 아마도 그것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신부의 자제심을 부서뜨린 모양이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신부가 비틀거리며 바깥쪽으로 도망치듯 뛰어나가는 것을 흘끗 쳐다본 에릭은, 그 동안 주머니에 넣고 있던 오른손을 꺼내 방 안을 향해 손을 펼치고는 중얼거렸다.
"나와도 돼."
"어, 눈치챘어?"
손을 펼침과 동시에 아까부터 쥐고 있던 펜듈럼이 은사슬 밑으로 찰랑거리며 떨어져 나왔다. 맨 끝의 금속 추에는 기이한 문양과 글자가 새겨져 있다. 에릭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망 안의 어둠에서 스륵 나타난 찰스는 고개를 숙여 그것을 바라보다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다. 손끝이 추에 닿기 전, 에릭이 싸늘한 어조로 내뱉듯 말했다.
"만지면 죽인다."
"깐깐하기도 하지. 마력을 재는 거야?"
"마력의 근원을 보는 거야. 입구."
찰스의 입가에 심술기 가득한 미소가 떠올랐다. 빙글 돌아서서 한때 인간의 육신을 구성하고 있던 뼈 붙은 고깃덩이와 피로 엉망이 된 실내를 둘러보고는 킥킥거리며 에릭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알려 줄까?"
"필요없어."
"글쎄? 내가 도와주는 게 훨씬 나을 건데, 주인님."
에릭의 눈이 차가와졌다. 붉은 입술이 뱉어낸 '주인님'이라는 말에 악마적인 조롱기가 담뿍 배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움따위 필요 없어."
대답 없이, 몽마는 과장스러운 동작으로 허리를 숙이며 한쪽 팔을 펴 의젓하게 절했다. 그리고 슬쩍 들어올린 흰 얼굴의 새파란 눈에는 명백히 장난기와 비웃음이 떠올라 있다.
"잘 해 봐. 말만 하면 찾아내 주지."
이를 꽉 악문 에릭은 마음 속에 차오르는 짜증을 지그시 누르며 펜듈럼에 정신을 집중했다. 아니, 집중하려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가 마음이 고요해지지를 않고 계속 설레이듯 심장이 뛰며 숨이 가빠지려 한다. 고개를 흔들고 다시 펜듈럼을 바라보는데, 두근거림이 가라앉기는 커녕 더 심해지는 것을 깨달은 에릭은 그제서야 이게 무슨 사태인지 깨닫고 고개를 돌려 찰스 쪽을 노려보았다.
"...너!"
"어? 왜?"
대체 왜 부르냐는 듯 뻔뻔한 어조로 반문하는 바람에 순간 말이 막힌 에릭은 그래도 지지않고 사납게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당장 그만둬."
"뭘?"
"뭐건, 당장, 그만둬!"
"내가 뭘 했다고? 오, 에릭, 설마 내가 지금 널 홀리고 있기라도 한 거야? 그런 거야?"
얄밉도록 다정한 어조, 쓸데없이 맑은 목소리, 태연자약하기 그지없는 태도에 자기도 모르게 이가 뿌득 갈렸다. 누가 보면 에릭이 찰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다고 오해라도 할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지금 에릭의 신체에 일어나는 모든 증상이 뭘 말하는 건지 모르기에는 지금까지 에릭이 악마 사냥꾼으로서 지낸 세월이 너무 길었다. 몽마의 주술이다. 마음의 틈을 타고 들어가 이렇게 속에서부터 노골노골 녹여 유혹하는 것이다. 느릿하게 달아오르는 열기에 말을 제대로 하기조차 힘들어져, 에릭은 이를 악물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이런, 데에서... 그럴, 마음이 나나?"
"어떤 데에서? 아, 도살장에서? 좋잖아? 여긴 아직도 저 수퇘지의 비명이 남아 있어서 오싹오싹하니 좋거든."
붉은 혀가 딱 그만큼 붉은 입술을 훑고 들어간다. 에릭 바로 앞으로 바싹 다가온 찰스가 양손을 뻗어 에릭의 얼굴을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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