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어벤저스 무비 이후, 탈출한 로키를 추적해 붙잡은 토르는 기억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로키와 함께 "세계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게 됩니다.
가격: 권당 6천원
"로키, 설마 없애야 하는 게..."
토르의 품 안에 붙들린 채 고개만 뒤로 돌려 시선을 내린 로키가 토르를 쳐다보고 환히 웃었다.
"...정말?"
"응, 저거야! 저걸 없애면 돼!"
토르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너 기억 없어진 거 아니지!"
아까까지의 목가적 풍경이 거짓말이라는 듯 산맥 뒤쪽에는 거대한 검은 구름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거기서 뻗어 나온 저 거대한 촉수들을 두고 그렇게 간단히 없애버리라는 말을 하는 건 아무리 봐도 사기다. 이건 틀림없이 로키의 음모일 것이다. 타당한 추측 아닌가!
"내가 기억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는 몰라, 토르. 하지만 저걸 없애지 않으면 이 세계가 사라질 거야."
맙소사, 촉수 하나 하나의 크기가 아스가르드의 궁전과도 같았다. 고작해야 촉수가 저 정도라니, 분명 검은 구름 아래 있을 본체의 크기가 어떻게 될지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대체 어떻게..."
로키가 팔짱을 끼고 촉수들을 내려다보다 말한다.
"토르, 그 망치로 저 소용돌이 안으로 날아 내려갈 수 있어?"
"...꿈도 꾸지 마, 로키. 그건 미친 짓이다."
로키의 초록빛 눈동자에 실망의 빛이 떠오른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럼 내가 뛰어내릴게."
"로키!"
거짓도 사기도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몸에서 힘을 빼고 뛰어내리려 했다. 토르의 강인한 팔이 로키의 허리를 힘껏 안고 있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놔 줘."
너무나 태연자약하게 말하는 로키의 눈에는 어떤 교활함도 무모함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평온한 시선으로, 그렇게 말하면 토르가 당연히 놓아줄 것처럼 말할 뿐이다. 그 눈을 응시하다 이를 악문 토르는 로키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너, 분명히 생각은 있는 거지!"
"저 안으로 뛰어내려야 해."
"소용돌이 가운데로?"
"한가운데로."
로키가 드디어 알아들어 기쁘다는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토르는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말려 보았다.
"이건 미친 짓이야!"
로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시선을 마주한 토르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경악스러운 깨달음이 떠올랐다. 진실로 이것이야말로 미친 생각이겠지만, 조롱이나 조소 한 조각 없이 그저 순수하게 크게 떴을 뿐인 로키의 초록빛 눈동자는 실로 아름다웠던 것이다. 그 눈동자에서부터 로키의 얼굴 전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오른다. 놀랍게도 로키가, 기만과 배신의 상징이, 불화의 신이, 진심으로 선의를 담아 토르에게 말한다. 마치 대관식 날 그에게 '사랑한다는 거 의심하지 마'라고 말해주었던 때와 꼭 같은 표정으로.
"그럼 나 혼자 갈게."
그의 동생은 참으로 부산한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지나치게 많은 생각이 담긴, 조금도 새로운 생각을 쉬지 않는, 요사스럽도록 다양하게 반짝이는 눈동자. 가끔 그것이 한 곳을 뚫어지게 바라볼 때가 있긴 했다. 그것이 자신을 향했을 때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로키의 시선은 언제나 토르가 시선을 돌리고 있을 때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 매끄러운 녹색 베일처럼 가볍게 스쳐 지나갔던 것도 같다.
지금 토르를 응시하는 로키의 눈은 너무나 투명해서 두 개의 유리알 같을 지경이다. 그렇게 순수한 눈으로, 아무 흉계도 음모도 간교도 갖지 않은 표정으로, 로키는 깊은 키스를 마치고 토르의 목에 손을 감았다.
"정말 너 내 형제 맞아?"
집요하게 확인한다. 방금 전까지 뜨겁게 입술을 얽었던 이의 질문이라기엔 너무나 엉뚱해서, 토르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입을 열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연인은 아니었고?"
"로키!"
간신히 그 입에서 경악에 가득한 외침이 터져 나왔고, 동시에 토르의 품에 안겨 있던 로키의 허리가 어느새 쏙 빠져나갔다.
"가자. 빨리 가야 해."
토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새로 도착한 땅의 잿더미를 넘어 걸어가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네번째 세상은 재가 가득한 곳이었다. 기묘하게도 누런 잿빛을 띤 버석한 바닥 위에 검은 돌과 자갈들이 굴러다니는 땅. 대체 무엇이 이 땅을 이리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어떤 생명의 자취도 없이 그저 잿더미만이 끝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색채는 좀 달랐지만 직전에 보았던 사막의 땅과 놀랄 만큼 닮아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 곳을 구하는 거냐? 이번엔 어떻게?"
"안 구해."
"...뭐?"
로키는 이제껏 늘 그랬듯 밝은 태도로 거침없이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툭툭 떨어지는 계시 같기도 하고 헛소리 같기도 한 말들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토르는 계속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
"여긴 우리가 구할 필요가 없는 곳이야. 균형, 균형만 지키면 돼, 우리는."
"하지만..."
분명 로키는 다섯 세계를 구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발을 멈춘 토르는 로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째서인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전투에서 토르를 단 한 번도 배신한 적 없는 거의 동물적인 직감. 불길함. 뭐라 말하면 좋을까. 방금 로키가 한 '균형'이라는 말에서 피 냄새가 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이 길의 끝에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미쳤어? 죽을 뻔 했잖아!"
연회장에 걸린 통돼지보다 나을 게 없군. 자조적으로 웃으려 입을 당긴 순간 얼굴에 지독한 통증이 달렸다. 아스가르드인의 피부는 보통 불에는 손상되지 않는 까닭에, 투신으로서 오랜 세월 살아온 토르조차 이렇게 광범위하고 깊은 화상을 입어 본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불에 달군 팬에 손가락을 대는 바람에 느꼈던 따끔함과는 차원이 다른 감각이다. 거의 처음 느껴보는 화상의 고통은 생각보다 끔찍해서, 그의 살을 익게 만드는 갑옷을 해제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칠 때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죽고 싶었어? 그러면 그냥 나한테 말해!"
"고맙다, 동생아."
농담으로 건넨 말이 아니다. 로키가 예의 그 치유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온 몸에서 녹색 빛이 흘러나왔고 그 빛이 쓰러진 토르의 몸을 감싸자 통증이 점차 사라져 갔다. 대신 상처가 나을 때 느껴지던 참기 어려운 간지러움이 온 몸으로 퍼져 나가,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토르는 전혀 다른 의미의 고통에 몸부림쳤다.
"긁으면 죽을 줄 알아."
검고 붉게 익어버렸던 살들 사이로 다시 완전한 새 살이 돋는다. 긁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참던 토르는, 마침내 온 몸에서 녹색 빛이 사라져 가고 그가 원래 알던 자신의 몸이 완전히 돌아온 다음에야 소리를 지르며 온 몸을 긁어댔다. 가려움이 사라지긴 했지만 참을 수 없이 긁고 싶었던 마음은 여전했던 것이다. 그런 그를 어이없다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던 로키와 눈이 마주친 순간, 토르는 피식 웃으며 로키에게 감사의 말을 했다.
"고맙...!"
아니, 하려 했다. 그가 키스해 오지 않았다면 했을 것이다. 겹쳐진 입술은 지난번과는 달리 거칠었고, 서늘한 로키의 혀가 아플 정도로 날카롭게 토르의 입을 파고 들어와 휘저었다. 기억을 잃은 이후 실로 처음 보는 분노에 가득 찬 로키의 얼굴 위로 투명한 선이 두 줄기 흘러내린다. 뿌리치려다 뺨 위로 서늘한 물방울이 후두둑 듣는 바람에 그것이 눈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토르는 그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로키를 바라볼 뿐이었다. 입술을 뗀 로키가 다시 한 번 키스하려다, 그제서야 얼굴을 피하는 토르의 얼굴을 붙들고 응시한다. 기억을 잃은 지금에도 언제나 모호하기 그지없는 로키답게 화난 건지 슬퍼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그가 말했다. 아니, 속삭였다.
"아팠어."
그리 속삭이며 손을 들어 제 가슴에 얹는다.
"네가 죽는다고 생각하자, 여기가 찔리는 것 같았어. 죽어버릴 것처럼 아팠다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로키가, 토르에게, 눈물을 흘리며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다니, 이런 말을 하다니.
"널 볼 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그래서 움직일 수 없었다. 옴쭉달싹 하지 못하고 경악한 채 로키를 바라볼 뿐이다. 간신히 숨을 들이쉰 토르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새하얀 백지 같은 머리를 어떻게든 제대로 굴러가도록 해 보기 위해 노력했다.
* 중요: 성인 인증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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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전에 감자밭에서 성인 인증 후 회지 구입하신 분: 구입하신 회지와 닉네임을 간단히 알려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