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13년 1월 20일 보라매공원 청소년 수련관 다이나믹홀에서 열리는 에릭X찰스 온리전Please, BE MY HUSBAND! 에 참가합니다. 부스는 에2 <교수랑 자석남이랑>이고요.
예정 신간 Zwei kleine Sterne(쯔바이 클라이네 슈테른) 수량조사/직수령 예약 합니다.
행사 잘 다녀왔습니다!! 멋진 행사였어요ㅠㅠ 주최해주신 분들과 부스 옆자리 빌려주신 이실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모처럼 핑크핑크한 커플 온리전 분위기에 맛이 간 나머지 배보다 배꼽이 더 크거나 말거나 통판을 질러봅니다. 안했다간 익히 아는 메까라 빔을 처맞지 싶어서 말입니다
사양 : A5/카피본/크라프트지, 흑백 표지/26p/에릭찰스/19금/2000원
* 이 팬픽은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 은하영웅전설(銀河英雄傳說, 1982년)과 영화 엑스맨 퍼스트클래스(X-Men: First Class, 2011년)의 크로스오버 AU입니다. 망해보자는 거죠 네......
에릭과 찰스 두 사람이 뮤턴트 능력을 지닌 채로(영화 묘사보다 약합니다!) 은영전 월드에 가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유행성동맹에 소속되어 있으며, 에릭은 동맹군 최정예 육전대인 로젠리터(장미의 기사) 장교이고 찰스는 사관학교 교관입니다. 활동 연대는 우주력 785년, 은하영웅전설 본편에서 15년 전이라 라인하르트, 양웬리 등 주요 인물들의 주요 사건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매우 편리한 설정 되겠습니다. 그리고 디테일한 부분에서 내맘대로 설정이 마구 비벼집니다. 관대하게 넘겨주십사.....
전 그저....제복을 입혀보고싶었어요;ㅁ;
예정과 달리 요런 표지로 찍었습니다. 폰카의 칙칙함을 한 15퍼 감안하시구요.
“내가 널 만들어냈다. 그래, 증오와 공포로. 하지만 내가 아니었다면 넌 미련한 평민들 사이에서 평생 밭이나 갈아야 했겠지. 이 특별한 힘을 가진 네가!”
무너지기 시작한 구조물 사이에서 초로의 사내가 열렬하게 외쳤다. 광기에 부식된 푸른 눈은, 저를 노리고 높게 쳐든 탄소 크리스탈 토마호크 대신 에릭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가 열망한 모든 것, 끝까지 집착해온 목적이 바로 거기 있다는 양.
“제국? 동맹? 아니면 페잔? 모두 틀렸어! 널 진정으로 받아들일 인간들이 있을 것 같으냐? 우린 달라. 우린 다른‘종족’이란 말이다! 날 죽여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 내 친애하는 에릭. Mein sohn.”
에릭의 입에서 울부짖음과 닮은 노호성이 튀어나왔다. 눈앞의 이 사내가 실로 이십여 년에 이르도록 누차 자신을 지옥에 떨굴 수 있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다. 무력한 소년이었을 때도, 최고의 기사 로젠리터가 된 지금도. 다 죽어가기 직전의 사악한 자는 세치 혀만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뱉은 것들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기억해라! 너에겐.....!”
제바스티안 폰 쇼어 백작의 유언은 불분명하게 끊어졌다. 길로틴 날이 떨어지는 것보다도 빠르게 내리찍은 도끼날이 그의 정수리부터 이마까지 쪼개지는 치명상을 입힌 탓이다.
로젠리터, 장미의 기사 엠블럼이 선명하게 그려진 경면 장갑의 하얀 표면에 그의 선혈이 튀었고 에릭은 순간 절망하였다.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그의 손에 묻어온 수없이 많은 죽음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죽음. 이 전투 전역에서 폰 쇼어의 존재를 발견했을 때, 이제야 긴 악몽의 종지부를 찍는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오랜 복수의 염원을 이룬 순간 에릭이 본 것은 그저 무기질한 어떤 죽음일 뿐이었다.
나는 물론 자네를 돕겠지만 에릭, 그를 죽인다고 네가 평화로워지진 않아
반사적으로 뇌리를 스친 친구의 안타까운 충고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이를 사려 물었다. 애초에 평화 따위를 바란 선택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인정할 수 없다. 충고의 의미도, 나약해지려는 마음도. 다만,
“랜셔 중령이다. C-13 클리어. 아군 피해는 장갑복 관절부 정비 미스로 인한 쇤코프 하사의 좌완 염좌 한 건. 제압 중 제국군 고급 장교 사살. 폰 쇼어 소장, 쾨니히스 백작이다. 군적 조회 바란다.”
전파 차단 구역을 지나 연결한 통신의 회답을 기다리며 멀리 떨어진 양륙함 함교에 있을 친구를 떠올렸다. 그의 푸른 눈을 당장이라도 보고 싶었다.
「반 샤페 대위입니다, 중령님. 현재 연대장님은 지휘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탭니다.」
에릭의 몸짓이 멈칫했다. 이번 강하 작전 특성상 위성궤도에 남아 지휘하던 연대장이 지휘 불능이란 얘기다. 그 사실이 뜻하는 바는 하나다.
「적의 발퀴레가 접근하다가 아군 화망에 걸려 폭발, 그러나 빠듯한 지근거리라 함교 바로 아래를 피탄 했다 합니다. 다행히 전사자는 없습니다만 연대장님이 파편에 관통상을,」
“군의는?! 이그재비어 소령이 함교에 대기해 있지 않았나!”
「소령님도 피탄 하셨습니다.」
짤막한 한 마디였지만 에릭에겐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선고였다.
에릭 랜셔가 오랜 증오를 증오로써 끝장내던 날, 찰스 이그재비어는 하반신의 모든 감각을 잃었다. 에릭을 위해 나온, 그 전장에서.
에릭이 찰스의 손을 잡았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단잠의 유혹과 살을 맞댄 상대의 체온을 기분 좋게 즐기고 있었다. 좀 더 길게 평온을 만끽하면서 찰스가 두런두런 잡다한 화제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교편을 잡아 강단에 서는 것이 본래 내 오랜 인생 설계였는데 말야, 사관학교에서 스타트를 끊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마음에 안드냐고? 그럴 리가. 에릭, 그런데 십대 애들은 어딜가나 애들이더라고. 치다꺼리 일일이 하려면....아이구. 어? 웃지마. 자네도 한 달만 부대껴보면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나올걸.
찰스가 과장스레 도리질을 친 뒤에 이야기를 이어갔다.
앳된 신입생들, 빠르게 성장하는 생도들, 그런 일상적인 이야기들, 악동들과의 끊이지 않는 해프닝, 그래도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젊음들. 간간이 유머러스한 촌평을 섞은 찰스의 이야기는 졸업한 소위들, 중위가 되기도 전에 전사한 이들의 소식, 챗바퀴처럼 이어지는 죽음들에 대한 짧은 한탄으로 이어지며 조금 어색하게 서늘해졌다. 하지만 에릭에겐 그 작은 어색함조차 상대적인 평화로움이었다. 그는 거의 무감각하게 제 손으로 박살낸 젊은 제국군 들을 떠올린다. 무수한, 정말 셀 수 없이 무수한 죽음들이었다. 적의 죽음, 그리고 아직 어린 들개 마냥 서툴거나 혹은 성마르게 굴다가 적에게 쓸려나간 아군의 죽음.....
제바스티안 폰 쇼어가 죽었다. 적의 죽음들을 꾸준히 쌓고 또 쌓아서 그 죽음을 얻었다. 바래왔던, 이를 갈았던 목적이었다. 허나 그렇다면 이후의 죽음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애초에 에릭 랜셔는 충성스런 제국의 신민도 긍지에 찬 공화국의 전사도 아니다. 그는 언제나, 비밀을 가진 어떤 이였더랬다. 폰 쇼어의 악의에 찬 단말마는 그러나 사실이다.
“에릭, 전쟁이 너무 길어.”
찰스가 불쑥 말했다. 나른한 정사 후의 공기, 일상의 화제로 따스하게 밝았던 분위기가 이제 완연히 어색하게 가라앉았으나 찰스는 개의치 않았다.
“.....동의하네. 이 전쟁은 어느 한 세력이 멸망해야 멈출 테지.”
“자넨 언제쯤 멈출 생각인가? 적어도 개인에겐 선택권이 있어.”
에릭이 의외라는 듯이 찰스를 다시 보았다. 속한 공동체에 대한 의무와 헌신을 그린 것처럼 지켜오던 찰스 이그재비어가 지금 일탈을 말한 것이다. 본인도 충분히 자각한 듯, 표정을 보여주지 않고 졸리다며 에릭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다만, 침묵하기 전 찰스의 텔레파시가 조용히 에릭의 머릿속에 울렸다.
-에릭, 자네의 전쟁이 너무 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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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토르의 머리카락으로 가짜 토르를 만들어 세계의 명운을 건 위험한 의식에 사용하는 로키와 그것을 막으려는 토르입니다.
3. 커플링은 로키토르로키, 수위는 전연령입니다.
4. 영화 세계관 기반이지만 오마주 수준으로 소년로키가 나옵니다.
책 사양:
1. 인쇄본에 표지는 머메이드지 금박입니다.
2. 총 104페이지 분량으로, 삽화는 없습니다. 3. 가격은 권당 6천원입니다.
통판 금액 계산법입니다.
우송료는 2,500원으로, 어떤 책이건 두권까지 동일하며
세 권 부터는 3,000원부터 시작해서 권당 500원씩 추가됩니다.
1권 : 6,000+3,000 = 9,000원입니다.
2권 : (6,000*2)+3,000 = 15,000원입니다.
3권 : (6,000*3)+3,000 = 21,000원입니다.
로키는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형제의 푸른 눈동자는 여느 때와 달리 멍하니 초점이 풀린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토르의 강인하고 밝은 마음을 이렇게 쉽게 주무를 수는 없었겠지만, 존경해 마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공격, 그들 사이의 강력했지만 이제 와서는 덧없이 사그라져 버린 형제애에 대한 지적, 그리고 과거의 몇 가지 추억에 대한 언급으로 로키는 토르의 마음에 난 작은 상처 속으로 창 날을 비집어 넣어 그 영혼을 말 그대로 '그러쥘' 수 있었다. 원래 짙푸른빛이었던 눈동자가 이제는 더 밝은, 신비하고 이질적인 푸른 빛으로 넘실대고 있다.
"형, 이제 내가 뭘 할지 궁금하지 않아?"
언제나 힘차게 움직이는 신체와 함께 부드럽게, 때로는 화려하게 물결치던 금발이 지금은 고요히 남자의 어깨 위로 드리워져 있다. 로키의 의지에 따라 잠잠히 서 있는 남자의 몸 안에서는 아마 로키가 알고 있는 바로 그 토르가 울부짖으며 노여움으로 몸부림치고 있으리라.
"다시 친해지니 좋네. 뭘 할까, 형? 이대로 무릎 꿇리고 아스가르드의 계승권을 포기하는 맹세라도 시켜 줄까?"
고스란히 듣고 있겠지. 마치 옛날 시절처럼 살가운 미소를 지은 로키는 형의 머리카락 한 줌을 그러쥐고는 거기 정중하게 입맞췄다. 그리고 늘 지니고 다니던 작은 칼을 꺼내 바로 그 머리타래를 잘라냈다. 침묵 속에서, 오직 토르의 영혼만이 무섭게 포효했고, 그로 인해 토르의 마음을 묶고 있는 마력에 뻐근한 저항감을 느끼며 로키는 미소 지었다.
"그렇게 싫어? 하지만 어쩌나, 난 이게 꼭 필요해."
품 속에 금빛 머리카락을 갈무리한 로키는, 석상처럼 굳어 있는 토르의 강인한 어깨를 슬쩍 두드리며 더욱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눈썹은 슬그머니 처지고 투명한 녹색 눈동자는 악의와 조소를 살그머니 숨긴 채 짐짓 상냥하게 빛난다. 언뜻 보면 옛날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럴 수 없다는 건 그도 토르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양 손으로 형의 굳건하고 단정한 얼굴을 붙든 로키는 천천히 입술을 가져갔다. 소리 없는 명령에 따라 가볍게 벌어지는 입술에 입술을 맞대고 혀로 그 윤곽을 덧그린다. 단단히 굳어 있는 남자의 마음 속에서 조금 전까지 울리던 포효와 저항이 마법처럼 멈추고, 완전한 정적만이, 기적같이 평화로운 정적만이 가득했다. 치열을 훑고 새어 들어가 농담으로라도 형제간의 인사라 부를 수 없는 키스를 한다.
"아니면-" 젖은 입술에 일부러 숨결이 닿게 말하고는, 아예 입술끼리 닿을 지경으로 바짝 얼굴을 들이대고 속삭인다. "형이 날 다시는 쳐다도 볼 수 없게 죄를 지어줄까."
말하며 천천히 입 끝을 올리자 아까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진동이 눈앞에 선 남자의 영혼 속에 울렸다. 그 압도적인 저항에 경직이 깨지는 것을 느낀 로키는, 토르의 얼굴에 경악과 거의 공포에 가까운 충격의 표정이 마그마처럼 끓어오르는 것을 깨닫고는 그제서야 통쾌하다는 듯 하늘을 보고 크게 웃었다. 부자연스러운 빛이 사라지고, 마침내 로키의 주술에서 벗어나 몸의 통제권을 온전히 되찾은 토르가 멱살을 잡기 위해 손을 뻗으며 거의 절규처럼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로키!!!"
녹색과 금색의 옷자락이 내민 손가락 사이를 스치며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게 빠져나갔다. 다시 한 번 내민 손에 서늘한 촉감이 닿아왔지만 어딜 보아도 실재하는 단단한 물질이 아니다. 이를 악문 토르의 푸른 눈동자에 진심으로 기쁜 듯 웃는 로키의 녹색 눈동자가 비쳐 들었다.
"늘 느려. 내 환영 갖고 싶어? 나중에 하나 보내줄까?"
"너!"
어느새 먼 등성이에 로키가 나타났다. 늘 그래왔듯 가볍게 스며들어 원하는 것을 빼앗고 사정권 밖으로 재빨리 물러나 버린 것이다. 사람이라면 보기도 어려운 만큼 먼 거리에서, 그러나 신의 눈으로는 틀림없이 보이는 곳에서 방금 잘라낸 토르의 금빛 머리카락 한 줌을 들어올린 로키는 보란 듯이 가볍게 흔들어 보이고는 짧은 말을 남긴 채 차가운 대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머리카락 고마워, 형. 앞으로 잘 쓸게."
가벼운 윙크, 그리고 로키는 사라졌다. 마치 금색 노을 속으로 사라지는 새벽 안개처럼.
"로키!"
노렸다는 듯 표창이 날아왔다. 묠니르로 쳐내자 표창이 날아온 곳과는 또 다른 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지금의 공격은 가벼운 장난이었다는 듯 안개를 뚫고 전혀 다른 방향에서 두 개의 표창이 날아온다. 몸을 돌려 피하며 표창이 날아온 쪽을 향해 힘껏 달려갔다. 소용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로키에게 다가가 붙잡을 수만 있다면 붙잡고 싶었다.
"로키, 정신 차려!"
"이전부터 말했는데, 토르. 난 완벽하게 제정신이야."
"그런데 이런 짓을 해?"
갑자기 침묵이 감돌고, 조금이나마 느껴지던 로키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 새로운 변화에 의아해 하기도 전에 바로 뒤에서, 착 가라앉은 로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뭘 하는지 형이 알긴 하고?"
귓바퀴에 느껴지는 숨결에 소스라치게 놀란 토르는 곧장 몸을 돌렸지만, 간신히 모습을 드러낸 '진짜 로키'는 다시 안개 속에 숨어 버렸다. 당황해 다시 고개를 돌리는 토르의 눈앞에는 짙은 안개만이 펼쳐질 뿐 로키의 그림자는 어디에서도 찾아낼 수가 없다. 토르는 이를 악물었다. 어렸을 때부터 형제로 자라나 함께 놀고 싸우며 체득한 진실이 하나 있다면, 로키의 힘은 토르의 힘에 대해서만은 상당한 우위를 차지한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가장 강한 것은 언제나 토르였고 가장 혁혁한 전과를 올리는 것 또한 토르였다. 그러나 로키의 사술과 마법은 적어도 일대 일에 있어서만은 두 형제의 힘에 거의 차이가 없도록 만들곤 했다.
"로키!"
이대로 간다면 로키는 또 사라져 버릴 것이다. 자그마한 바스락 소리에 몸을 돌린 토르는 갑자기 미묘한 감각의 차이를 느끼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가슴에 느껴지는 온기가, 그가 몸을 돌리는 방향에 따라 아주 미묘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이제는 거의 뜨겁기까지 한 펜던트가 오직 그만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볍게 울리며 반응하는 것이다. 아마도 로키가 있을 바로 그 곳을 향해 몸을 돌렸을 때에만.
"오, 형님, 너무나 반갑지만 이젠 가 봐야 할 것 같아. 시프에게 안부 좀 전해 달라고. 물론 그 계집애는 내 이름만 들어도 털을 곤두세우고 쉭쉭거리겠지만, 난 그게 늘 좋더...!"
이번에는 틀림없이 제대로 잡았다.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펜던트가 울리는 방향을 따라간 곳에서 안개 속 희미한 그림자가 보였다. 팔을 휘둘러 잡히는 것을 붙들고 보니 바로 로키의 목이었다. 끌어당기자 화들짝 놀란 녹색 눈동자가 희미한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드디어 잡아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다른 한 팔로 어깨를 붙들고 힘껏 벽을 향해 밀어붙였다.
"로키!"
한동안 로키는 할 말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바로 앞에 보이는 토르의 얼굴에 떠오른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이렇게 안개 속에서 붙잡힌 것이 처음이라 그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얼굴을 바짝 들이댄 토르는 아까 느꼈던 희미한 이질감이 헛것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깨닫고 으르렁거렸다.
"너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여명이 서서히 밝아오는 시간, 희미한 빛 속에 드러난 로키의 얼굴은 평소의 피부빛을 고려한대도 지나치게 창백했고, 눈 밑에는 검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로키의 무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누누이 말하지만 내가 말할 리가 없"
"로키 오딘손!"
이번에야말로 로키의 입이 꾹 다물렸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를 들었다는 듯 차가워지는 눈동자를 향해 토르는 간절히 다시 한번 말했다.
"지금 네 얼굴이 어떤지는 알고 있나?"
"그래, 토르 오딘손, 더럽게 잘 알고 있지. 근데, 지금 형 얼굴이 어떤지는 알고 있어?"
"다 그만두고 함께 가자. 널 묶어서 데려가고 싶지는 않아!"
"정말 지긋지긋해."
나직하게 중얼거린 로키가 눈을 내리깔고 어깨에서 힘을 뺐다. 놀란 토르가 멍하니 바라보는 눈앞에서, 로키는 모든 저항의 의지를 멈춘 채 얌전히 서 있었다. 설마 싶어 천천히 손에서 힘을 빼 보았지만 움직이지 않은 그대로였다.
"...로키?"
"날 묶어서 데려가고 싶지는 않다면서?"
설마 같이 가자는 건가? 아주 약하게나마 희망을 갖게 된 토르가 한 발 물러선 순간, 로키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 옛날부터 가끔 볼 수 있었던, 아니 사실은 생각보다 자주 보았던 표정이었다. 어린 로키가 작은 속임수를 부릴 때의 표정-
"...!"
아니, 포옹했다. 꼭 옛날과 마찬가지로, 원래대로라면 영광의 날이 되었을 그 날, 형제애와 우정을 입에 담으며 끌어안았을 때와 똑같이.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어쩌면 형은 변하질 않을까."
'-한다는 것만은 잊지 마.' 거칠 것 없고 걱정할 것이 없었던 날의 둘의 모습이 지금 둘에 겹쳐진다. 할 말을 잃고 벌린 입에 헛바람이 들어오고, 로키의 손이 닿은 갑옷 틈새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치명적이지 않은 통증이.
로키가 토르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
"잠시 뒤면 마비가 풀리겠지만, 그 땐 난 없을 거야, 형." 싱긋 웃는 그의 표정은 그러나 어쩐지 오한이 드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제대로' 되면 말이지. 기대해도 좋아."
로키는 힘을 개방했다. 무스펠헤임과 달리 이 곳 요툰헤임은 아무리 부정하고 싶다 해도 그가 태어난 곳이었고, 그래서 살을 에일 듯한 냉기에도 불구하고 아주 편안히 서 있을 수 있었다. 서리의 함을 다루며 익힌 그대로 이 곳의 냉기를 받아들여 마력을 채운다. 온 몸의 혈관에 얼음처럼 차가운 마력이 흘러, 눈을 뜬 순간 이제는 푸른 색이 된 피부 위에 희미한 흰 김이 어리는 것이 보일 지경이었다. 그냥 수증기가 아니라, 순수한 마력이 온 몸에 흘러 넘치다 못해 이렇게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는 것이다.
깊이 숨을 들여 쉬며 팔을 들어 올렸다. 무너진 협곡과 바위 사이로 이 쪽을 빤히 바라보는 빨간 눈동자들이 있었지만, 놈들 중 누구도 로키를 향해 다가오지 않았다. 두팔 뿐 아니라 얼굴과 온 몸에 새겨진 문양 때문이리라. 서리거인들은 그 문양으로 서로의 강함을 가늠한다. 그러니 친부 로피와 유사한 로키의 문양은 잃어버린 옛 위대한 왕을 기억나게 했을 것이다. 하물며 그 왕을 직접 죽인 자가 누구던가. 게다가 로키의 바로 뒤에 따라오는 이가 바로 토르다. 서리거인 학살자, 가장 무서운 적 토르.
목숨 아까운 줄은 아는구나. 차가운 비웃음만을 남기며 로키는 높은 봉우리를 밟아 올랐다. 무스펠헤임 때와는 달리 걷는 걸음마다 새로운 힘이 차오른다. 이전에 자신의 정체를 몰랐을 때에는, 그저 이 땅이 아스가르드보다도 마력이 꽉 차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서리거인들의 마력이 강할 만도 하다고 여기기도 했다.
"춥나?"
따라오는 이의 입에서 흰 김이 뿜어져 나왔지만 대답은 따라 나오지 않는다. 피식 웃은 로키는 아스가르드 바로 앞에 요툰헤임으로 가기로 정한 것은 옳은 일이었노라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무스펠헤임에서 그는 너무 많은 마력을 사용했고, '그것'들을 사용해 처음 이 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거의 죽기 직전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마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그리고 이 곳에서, 그의 힘은 점차 완전해져 가고 있었다. 실로 우습지 않은가. 꿈에서라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곳, 한때는 온전히 파괴해 버리려 했던 곳이 그에게 이리도 충실한 힘의 원천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이.
로피의 힘을 기억한다. 그의 손짓과 명령에 이 곳의 바위들이 복종했고, 거대한 괴물들이 그의 의지에 따라 토르의 일행들을 공격했었지. 만일 이 곳을 거처로 정한다면 로키 또한 그러한 힘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제는 아주 옛날처럼 느껴지는 그 때 서리의 함을 손에 쥔 순간 그의 온 몸에 흐르던 차가운 마력이 그렇게 속삭였다. 하지만 타고난 유혹자인 로키는 그러한 서투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아스가르드인이었고, 정당한 아스가르드의 왕이었다. 그렇게 오딘 앞에 누가 진정한 왕인지 보일 작정이었다.
정상에 다다랐음을 눈앞이 환해짐으로 깨닫는다. 의식을 벌일 수 있는 곳, 위대한 제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곳, 요툰헤임의 지기가 모이는 곳에 섰음을 깨달은 로키가 눈을 감았다.
"주인님?"
"준비해."
앞으로 두 번, 두 번이면 모든 일이 끝난다. (스포일러 방지)
"시간이 없다. 우리 다정한 형님께서 또 방해하러 오실 테니."
잠시 후 로키가 눈을 떴다. 손에 들린 창이 빛난다. 창을 들어 올렸다. 그 끝 쪽 하늘에서 이 곳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작은 점이 보였다.
축전 소설
꿈이라는 것을 깨닫자 왕의 마음은 편해졌다. 젊은 왕이 잠을 이루기 위해 뒤척이던 침대는 안락했으나 아름다운 처녀도 나긋한 소년도 아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걱정과 고뇌, 슬픔과 두려움, 후회와 절망, 환희와 열망만이 함께 누워 있었다. 이것이 꿈이라면 여기는 나의 왕국이 아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여기에서만은 모든 것을 잊고, 스스로 머리 위에 얹었던 왕국마저 내려놓고, 잠시 숨을 돌려도 되지 않겠는가...
"왕이 왕국을 잊을 수 있다니 부럽군."
왕은 홱 몸을 돌려 자신의 안도감을 얄팍하다 비웃은 목소리를 바라보았다. 그 부드럽고 정중한 목소리에서 조롱을 읽은 것은 그것이 자신의 목소리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마음의 소리가 천사의 나팔에 실려 허공에 울려퍼지듯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고, 자신의 얼굴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왕은 깜짝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두 걸음은 물러나지 않았다. 이것은 꿈이니까, 괴상한 차림의 내가 나를 보는 일도 일어날 법 하지 않은가.
토르는 미드가르드를 좋아했다. 사람들은 약하지만 순박하고 정이 깊었으며 무척 온순했다. 음식도 맛있고, 모든 것이 온화했고, 약하고 순박한 대로 그 나름의 맛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하고 토르는 그저 순수하게 미드가르드를 즐겼다. 이해는 가지 않았고, 자기라면 다르게 행동할 부분에서 너무나 의외의 모습을 보일 땐 놀랍기도 했지만 그건 그냥 미드가르드 인의 풍습이고 경향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렇게 보는 세상은 생각보다 아름다워서 토르는 그 점을 흐뭇하게 여겼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입에 맞을 수는 없는 일. 불만이라면 불만인 점은 딱 둘이었다. 이들의 술은, 너무 약했다. 토르는 아스가르드의 술이 그리웠다. 그리고 그런 술을 같이 마셔줄 동지도 그리웠다. 미드가르드 인들은 대체로 굉장히 술에 약했다. 마시기도 잘 못 마시지만 마시고 난 다음날 숙취도 심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가 토니였다. 참 열심히 잘 마시지만 마시면서 사고도 잘 치고 다음날은 머리가 아프다고 난리였다. 고작 그걸 마시고 숙취라니, 토르 입장에선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봐줄만하게 마시는 사람이 캡틴이지만 그는 술 마시기 자체를 즐기지 않았다. 토르에게 혼자 술병을 기울이는 버릇은 없었고 그래서 그는 솔직히 조금 낙담했다. 인생에서 술이 빠지니 얼마나 심심하고 우울한지! 그래서 토니가 선물이라며 술병을 보여주었을 때 토르는 환호했다. 불만 하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꿀술이라고!"
토르는 말 그대로 환호작약했다. 초인적인 존재가 꼭 어린애들처럼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는 모습을 본 토니는 웃으며 대답했다.
갓 떠오른 햇살처럼 밝은 금발 머리카락과 눈부신 푸른 눈동자가 환하게 웃는 것을 보았을 때, 로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등줄기를 치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얼음이 천천히 척추뼈를 타고 핥아 오르는 듯한 감각.
불길하다.
토르가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로키!"
"아아……."
로키는 애매하게 인사를 받았다. 불길함이 스물스물 제 체적을 키운다.
로키 오딘손은 자신의 머리와 마법을 무엇보다 신뢰했다. 아스가르디안 전사로서 평균은 넉넉하게 넘는 육체적 강함을 가지고 있으나, 신들의 왕 오딘과 그 후계자 토르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대신 그가 가진 무기는 영리한 머리와 간교한 혀, 그리고 이 둘이 손잡고 짜내는 마법. 그는 자신만의 무기를 강하게 믿고 의지했다. 또한 그의 신뢰에 마법은 거의 모든 경우 충실히 부응해 주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한 것만은 아니다.
가끔 로키의 마법이나 그 결과가 도저히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튕겨 나가는 고무공처럼 제 주인의 뒤통수를 걷어차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 경우의 수는 토르가 관련되어 있는 것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막 공들인 마법 실험을 마치고 오는 길에 토르를 마주하는 것은 그에겐 일종의 트라우마를 자극 당하는 것과 유사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은 결국, 미드가르드 용어로 표현하자면 일종의 PTSD인 것이다.
로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리 없는 토르는 여전히 태양광 발전에 응용 가능 할 듯한 햇살 미소를 내뿜으며 하나뿐인 동생 걱정을 시작했다. 로키의 어깨를 탕탕 내려치는 손길이 유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