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을 달리는 모든 자들의 모든 귀환은 사실상 죽음으로부터의 귀환이다.
에어록 기밀해치의 점멸하는 광신호가 녹색으로 바뀐 것을 확인하고 헬멧을 벗은 남자가 무덤덤하게 곱씹었다. 이 실감나지 않는 귀환도 지난날 수태 해왔던 귀환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본질을 가지고 있노라고. 죽음으로부터의 귀환, 그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 귀환이었을 뿐. 완전히 억누를 수 없이 상기된 뺨은 다만 관성일 터였다. ‘록온 스트라토스’의.
“집에 돌아온 셈이려나.”
아, 그렇다. 자신은 다시 한 번 여기에, 이 이름으로 돌아오는 것을 선택했다. 그 외에 무엇이 더 있단 말인가.
해치가 완전히 열리고, 쏟아진 빛 속에서 그는 여상히 웃었다. 다른 표정은 아예 알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미소 뒤의 인사가 아주 조금 메인 채 나온 건 단순히 기나긴 비행 끝에 목이 말랐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녀왔어. 늦어서 미안하구만 아저씨.”
입을 있는 대로 딱 벌린 채 헉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굳은 이안 바스티의 넋 놓은 얼굴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몰고 온 셔틀로 이 기지의 카모플라주를 제치고 짤막히 암호 통신을 넣었을 때는 귀청 떨어지는 경악의 소리라도 내질렀는데 말이지. 수 년전 이 라그랑쥬3 기지에서 훈련받을 당시 우연히 마주친 기억이 있는 그의 젊은 부인이 떨리는 소리로 ‘록온?’이라 되물을 때까지도 이안의 경직은 풀리지 않았다.
“그래요, 록온 스트라토스. 이제야 귀환했습니다.”
“이런…… 젠장맞을…! 너 정말로 록온?! 그때 GN암즈와 영영 날아가버린 그 록온??”
“보다시피 영영 날아가진 않았네요. 록온이 뭐 또 있답디까.”
딴에는 가볍게 맞받은 대꾸였으나 신음소리와 함께 얼굴을 감싸쥐고 주저앉은 이안에겐 전혀 가볍지 않은 확인이었나 보다.
비록 보안지침은 어겼지만 좌표를 기억해둔 CB거점이 하나라도 있어 다행이라 운을 뗀 ‘록온’이 늘 그래왔듯 익숙하게 너스레를 떨었다.
“CB의, 자세히 밝힐 수 없는 서포트 섹터 덕을 봤다고만 해두죠. 사실 나도 자세한 건 모른다구요 아저씨. 캡슐에서 줄창 자다가 나온지 얼마 안 되어서. 그 친구들은 저궤도 스테이션에 고물 셔틀 하나 떨궈놓고 다음은 알아서 하라며 사라졌고. 차라리 CB경력 오래된 아저씨 쪽이 뭔가 짚이는 데가 있을 법하지 않나?”
“……빌어먹을.”
“어이 아저씨…… 그래도 나, 간신히 살아 돌아온건데…”
“이 빌어처먹을 자식아!! 망할 새끼야!!! 이제야, 왜 이제와서..!!!”
이안이 귀환한 자의 스페이스 슈츠 앞자락을 그대로 쥐고 흔들며 외쳤다. 혼돈과 기쁨과 당장 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전율이 가지가지 골고루 섞인, 최초로 반응다운 반응이었다. 장년의 엔지니어는 ‘록온’의 어깨를 덮고 거의 가슴께까지 닿는 갈색 곱슬머리가 세차게 휘날리도록 그를 격하게 끌어안고서 계속 욕을 퍼부었다. 이렇게 돌아올 것을, 돌아오면 되는 것을, 어째서.
4년의 시간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되돌아온 청년도 그런 그의 반 넋두리나 다름없는 욕설들에 맞장구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게 말야 아저씨, 이렇게 돌아오면 되는 걸, 하로와 한 약속도 어기지 않게 되는 걸, 어째서 이리 오래 걸렸나 말야. 실은 캡슐에서 일어난지 2년 반, 재활 프로그램까지 마친지도 반 년째인데 자신은 왜 그 시간동안 연락도 없이 홀로 귀환을 머뭇거렸을까, 어차피 돌아올 곳은 하나고 해버린 선택 역시 달라지지 않을 텐데 어째서.
“세츠나는 건재하지? 건담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나도 보고 들었어. 뉴스 영상에 잡힌 기체의 컬러링이 딱 세츠나 커스텀이던걸.”
“아…무사하다마다. 근사하게 자랐지.”
“그 녀석은 그럴줄 알았어. 미스 스메라기는 어때, 여전히 술고래 생활을 하나? 티에리아와 알렐루야는? 아 젠장… 뉴스 멘트에 ‘그들’이 돌아온 거 같다며 복수형으로 나올 때 내가 얼마나 가슴 쓸어내렸게?”
“……록온.”
실감나지 않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는 어조로 이안이 그를 불렀고, 솔직히 본인도 실감하기 힘든 귀환의 과정을 다소 어색하게 이어 나가던 청년이 그에 응했다.
“아저씨가 코드명 부르는 걸 다시 들으니 기분 묘해지긴 하네.”
“이거 뭐부터 말해야 할지…… 어찌됐든 살아있어서 기쁘고, 돌아와 줘서… 일단은 고맙고, 그런데 지금부터 20시간 내에 우주로 탈출한 톨레미2가 귀항할텐데…”
“내가 제때 도착한 셈인가? 어때 아저씨, 내 자리가 아직 남아 있을라나.”
“……이런 젠장할.”
“아저씨?”
“엿처먹을!! 염병할!!!”
“이보십쇼, 이안 바스티 아저씨… 나 아직 쓸만하다고…? 공연히 그 오랜 시간을 재생 캡슐서 죽친 게 아니라고.”
“4년이다, 이 망할 놈아!! 4년이라고!! 의뭉스런 놈들이 주워간 데서 자빠져 처자는 줄도 모르고, 티에리아나 세츠나가 죽은 놈 유지를 매일같이 들여다보며 기를 쓰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알기나 하냐!”
“워어- 무려 죽은 자의 유지냐고. 그 녀석들도 참.”
“너만큼이나 꽉 막힌 놈들이지.”
“…조직이 궤멸되었었단 얘기는 들었어. 내부 배신자가 유사 태양로 기술을 유출시켰었다는 소식도. 그렇군, 티에리아와 세츠나가 주력으로… 스메라기씨와 알렐루야가 아니라……”
“세츠나와 미스 스메라기가 재합류한지는 몇 주일 안 되었고 알렐루야도 포로 신세에서 구해낸 지 얼마 안 되었다.”
“……………”
“좋아, 다 좋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는데 너, 예전처럼 싸우려고 돌아온 거냐?”
“당연한 걸 묻는구만. 아직 분쟁은 계속되고 건담은 우리 손에 있으며 우리는 셀레스티얼 빙이야.”
“사적인 원한을 황천 언저리까지 질질 끌고 갔던 놈이 뺀들뺀들 말은 잘한다.”
“…세츠나가 그래?”
“하로의 메인터넌스를 누가 하는지 잊었냐.”
“두 번은 안 해.”
록온은 제멋대로 자란 장발을 쓸어 넘기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리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시간의 소위인지 제대로 쏘았다고 생각한 소위인지는 아마 그 자신도 아직 알 수 없을 테지만.
이안은 지끈거리는 이마에 주먹을 대고 누구에게랄 것 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분쟁은 계속되고, 힘 가진 자들의 폭력은 에스컬레이트 되었고, 그리 된 세계의 변화는 CB의 소치이며, 전장의 왜곡이요 세계의 악의 그자체인 듯한 사내는 여직도 펄펄 살아 날뛰고 있음에다. 아무것도 나아지거나 해결되지 않은 세상이 죽음으로부터 귀환한 록온 스트라토스 앞에 기다리고 있음을 차마 들이댈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울러, 짐작컨대 네가 지켜왔을 너의 유일하게 남은 가족 또한 이 아수라장에 들어와 있다는 것도.
그래, 사실 그게 가장 골칫거리였다. 두 명이 되어버린 록온 스트라토스가.
「레이저 센서, 톨레미2와 동조」
「톨레미2 터치다운 3, 2, 1」
낯익은 도장을 한 전투 유송함의 접현 완료와 탑승해치 접속을 알리는 시그널을 지켜보며 ‘록온’은 이렇다 할 흥분없이 그들을 기다리는 스스로에게 다소간 위화감마저 느꼈다. 리히티와 크리스의 죽음, 스메라기의 좌절, 세츠나의 방랑, 티에리아의 분투, 알렐루야의 고난, 그리고……
세계는 변했고 동시에 변하지 않았다. 동료들 역시 변함없이 같은 의지로 뭉쳐있되 이미 최연장 마이스터 록온 스트라토스의 비호를 받던 그들이 아니다. 미지의 시간과 경험이 그들 사이에 가로 놓였음에도 그가 이 해후를 큰 동요없이 기다릴 수 있는 까닭은, 록온 자신도 ‘록온’으로의 각오가 변한 데가 거의 없는 동시에 스로네 쯔바이와 사투를 벌이려 출격했을 때의 그가 아니기 때문일 터였다. 증오와 복수, 그리고 그로인해 막혀버린 미래와 정면으로 마주 선 뒤, 4년의 시간 대부분을 재생 캡슐과 격리시설에서 보내고 나온 청년이 문득 실소했다.
-이미 판단이 끝났기 때문일테지.
상황에 대한 대처가 결정난 판국에 새삼 덧붙이거나 애간장 끓일 일이 무에가 있는가 말야.
그의 얼굴에서 서서히 수그러든 쓴웃음은, 해치 오픈과 동시에 완전히 증발해버렸다. 거의 패닉으로 일그러진 낯익은 얼굴들 저쪽 끄트머리에서 가장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을 발견했으므로.
흔들리는 밤색 고수머리, 단박에 질려버린 양 창백한 얼굴, 충격으로 커진 녹색 동공, 멍하니 어진 마른 입술 사이에서 소리도 없이 새는 <형>.
“여어- 모두들. 오랜만이야.”
“…록…온 스트라토스…”
거의 신음이나 다름없는 티에리아의 호명에 가벼이 고개를 까딱해보인 그가 곤란한 표정을 숨기지도 않고 팔짱을 꼈다. 도무지 믿을 수도 실감나지도 않겠지. 이쪽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스스로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만큼은 너무나 확실해보였다.
“뭐, 이렇게 되었다. 늦어서 미안.”
“정말 록온…… 닐 디란디인가.”
“듣기로 몸의 70%가 이식된 장기에 재생한 신품이라곤 해도, 일단은 맞아. 세츠나.”
“……!!”
예전과 다를 바 없이 털털하고 싹싹한 대답은 허나 세츠나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던져진 것이다. 그리고, 있을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려 흐트러진 호흡들에 편승해 긴 한숨을 한 번 내쉰 <록온>이 곧바로 선고를 내렸다.
“거기, 신참 록온 스트라토스씨?”
닐 디란디는 대답할 타이밍조차 주지 않는 절묘한 속도와 단호함으로 내뱉었다.
“미안한데, 그쪽은 해고야.”